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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블로그 잡학교실/미키베어그릴슨의 살아남기

러브라이브 애니메이션을 위한 변명



러브라이브 애니메이션은 말이 많다. 엔딩에 관련한 문제도 있었고, 스토리텔링에 관련된 문제도 있었고, 표절에 관련한 말도 있었다. 나도 대세에 편승해서 러브라이브 애니메이션에 관한 나의 생각을 몇 자 써보도록 하겠다. 참고로, 앞에서 말한 문제들에 관해선 별로 관심 없다.

 

1.

러브라이브 애니메이션(이하 러브라이브’)은 아이돌 애니메이션이다. 아이돌 애니메이션의 주체는 물론 아이돌, 여기선 9인의 뮤즈겠다. 아이돌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꼭 일상물의 형태를 취할 필요는 없겠지만 -예를 들면, 뮤즈와 아라이즈의 스쿨아이돌의 명예를 건 땀 냄새 나는 드라마를 그린다던가- 러브라이브 애니메이션은 확실히 그런 쪽은 아니다. 오히려 그건 WUG 쪽이 더 가깝다. , 그럼 러브라이브는 아이돌 뮤즈의 일상 내지는 생활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아이돌, 생활, 그리고 미디어. 이 세 가지 키워드에서 나는 <위너 TV>, <2NE1 TV>, <EXO’s 쇼타임>과 같은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혹시 읽는 이 중에 우리들의 아이도루에게만 관심이 있고 삼차원 아이돌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 있을지 몰라 설명하자면,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는 건 아이돌의 연습, 숙소 생활, 가정생활 등을 담아서 편집해서 내보내는, 말 그대로 아이돌 한정 생활밀착형 프로그램이다.

잠시 더러운 현실로 와보자. 돈을 벌어야 하는 소속사 입장에선,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미덕은 단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신인 그룹 홍보에 도움이 된다. 앞에서 말했던 예 중에선 YG의 그 당시 신인 그룹이었던 위너를 대상으로 한 <위너 TV>가 대표적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아이돌의 새로운 모습을 계속 비춰줌으로서, 팬들로 하여금 지속적인 덕질을 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앞서 말한 <2NE1 TV><EXO's 쇼타임>이 그러하다. 팬들의 지속적인 덕질은 곧 소속사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돈줄이다. 팬들은 아이돌의 항상 멋지고 예쁜 모습만 바라보다가, ‘우상의 무대 뒤에 숨겨진 노력과 인간미를 보고 신선함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은 딱히 높은 시청률을 바라보고 제작하지 않는다. 첫 번째 이유는 어차피 보는 팬들만 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프로그램 내부의 콘텐츠가 팬들에 의해 2차 생산되면서 확산되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2차 생산이라 함은 비디오 클립, , 합성 등의 팬들의 잉여짓에 의한 프로그램의 부산물을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리얼리티가 있을지언정 리얼은 아니다. 실제 생활처럼 보일지언정, 방송에 최종적으로 나가는 프로그램은 잘 짜인 편집과 정교한 연출로 포장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멤버 중 한 명이 다른 멤버를 상대로 패드립을 치거나 하는 내용을 방송에 내보낼 순 없으니까.

 

2.

이런 면에서 볼 때 카메라 화면과 애니메이션이라는 별로 중요치 않은 차이점만 제외하면, 러브라이브는 완벽한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러브라이브 프로젝트를 분담했던 G‘s 매거진, 란티스, 그리고 선라이즈 세 회사는 1기에는 프로젝트에 대한 홍보가 필요했고, 2기에서는 형성된 팬덤의 굳히기가 필요했다. 2기 종방과 함께 극장판 제작 발표를 하면서, 우리는 아직 이 꿀을 빠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리얼리티라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현실의 아이돌보다 더욱 완벽하다. 영상을 내보내기 위해 아이돌 구성원의 생활을 짜깁기할 필요가 딱히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뮤즈는 더러운 현실에서 살지 않고 아름다운 2D에서 사니까. 그저 존재하는 캐릭터 설정에 맞추어 적절한 화면에 적절한 소리에 적절한 스토리를 내보내면 된다. 물론 그게 겁나 어려운 거지만. 그래도 어떻게 보면, 이것은 오타쿠들이 우리 아이도루는 연애 같은 거 안 하니까 개이득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것과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애니메이션의 성공이 세 회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서 프로젝트 내에서 부가 아닌 주요소가 되었다는 점 정도이다.

적어도 우린 NTR은 안 당한다. 야호!

 

3.

그래서 나는 (단어 선택의 모호성은 뒤로 차치하고) ‘러브라이브는 좋은 애니메이션인가?’라는 질문 대신에 러브라이브는 좋은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하고 싶다. ‘좋은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좋은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훨씬 쉽다. 프로그램의 지향점이 명백한 데에다가, 아이돌 담론의 경우 국내에서 K-POP 열풍을 타고 학술적인 연구가 상당히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즉답을 해보자면, 좋은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미덕은 대상 아이돌의 소비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에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보자면 다음과 같다.

즉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아이돌 그룹의 캐릭터를 생성하고 그를 통해 음악의 성공과 아이돌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아이돌 그룹의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고 홍보하는 장으로 기능한다.”(김수정, 2013)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누군가가 말했던 러브라이브 애니메이션은 20분짜리 앨범 CM이다라고 빈정댔던 것이 오히려 핵심을 꿰뚫은 말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의 브랜드 정체성이라는 것은 브랜드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이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정체성 또한 포함하고 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이미 포화 상태를 넘어선 현실 아이돌계과 비교해보면 2D 아이돌계는 정말 널널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돌 마스터를 제외하고 싸울 일이 없는 -그마저도 산업적으로 부분적으로 동일한 자본을 공유한다- 러브라이브에게 그룹 자체의 정체성을 밝히려 하는 것은 지금 시점에선 과다한 작업이지 않을까하다. 오히려 이 경우에는 범위를 축소시켜 각각 캐릭터의 정형성과 의외성에 의한 브랜드 가치를 감상자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인식시키느냐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된다. 또한 팬덤의 정체성이 확립되었는가에 대해선 성공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P와 러브라이버, 애니화 이전과 이후의 러브라이버, 그리고 러브라이버와 비러브라이버가 (반농담조라도) 서로 물고 뜯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럽폭도라는 용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러브라이브가 나름의 브랜드 정체성을 잘 확립했다는 방증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물론 그 정체성이 건전한가에 대해선 별개. , 실제 아이돌 팬덤이라고 팬덤의 성격이 다 건전한 건 아니지 않는가?

사람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전체적인 맥락이라든가, 결말이라든가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선 그런 건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모든 것은 브랜드 정체성의 확립으로 이어져야 한다. 시청각적으로 어떠한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캐릭터를 확립하고 파괴하고 재구성을 하는데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물론, 되도록 소비를 유발하는 방향으로. 이것이 마치 쉬운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실의 아이돌들이 자기 그룹과 개개인의 캐릭터를 대중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개인적인 노력과 잘 만들어진 기획, 산업 규모의 자본을 요구하는 지 생각해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2D에서도 마찬가지로 외모, 복장, 성격 등의 캐릭터 요소와 음악, 스토리, 연출 등의 캐릭터 외 애니메이션 요소로 정리될 수 있는 모든 디테일은 캐릭터 정체성을 지향해야 한다. 모든 시청각적인 요소를 무에서부터 의도적으로 구성해야 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특성 상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더 쉬운 작업은 결코 아니다.

캐릭터의 파괴와 재구성...아니다


4.

일반적으로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외형적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캐릭터 등의 특정 소재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행동하는 에피소드 구성과 그저 실생활을 관찰하며 다큐멘터리성을 확보하는 일상 구성이다. 아이돌 마스터 애니메이션은 매 화마다 차근차근 한 명 씩 짚어나간다는 점에서 에피소드 위주 구성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마다 각각의 인물의 성장과 캐릭터성에 대해 다루었고 성공적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러브라이브 애니메이션은 두 가지 구성을 섞은 형태를 띠고 있다. 나는 사실 두 구성 중에서 에피소드에 관한 것은 말하고 싶지 않다. 러브라이브에서의 에피소드가 만드는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낙제점이다. 궁극적인 지향점인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각각 에피소드는 유치하다.

내가 러브라이브에서 주목하는 점은 오히려 일상 구성에서 나타난 디테일한 요소들이다. 의식을 하면서 보다보면, 순간순간의 장면들에서의 고전적 캐릭터 분석틀 요소 중 동적 요소-발화, 몸짓과 행동, 그리고 수사적 요소-가 그 캐릭터성을 세심하게 보존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6화의 1030초부터 1225초까지의 장면을 보겠다. 무슨 장면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첨언하자면, 이 장면은 캐릭터 교환 장면이다.

시간

설명

~1035

옥상 문을 열고 들어오는 호노카. 자신의 말투로 인사를 하고 나서, 곧바로 우미의 말투로 교정한다.

~1040

에리 역을 맡고 있는 코토리의 하라쇼”. 인사를 주고받은 후 린 역을 맡은 우미를 본다.

~1100

린의 옷을 입은 우미가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우미가 무리라고 하자, 호노카는 우미의 말투로 독촉한다.

~1105

태세 변환을 해 제대로 린의 흉내를 내기 시작하는 우미.

~1110

마키 흉내를 내며 우미에게 빈정대는 린. 호노카는 우미의 말투로 린을 나무란다.

~1117

자신의 흉내를 내는 린에게 자신의 말투로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마키. 린은 마키의 말투로 거절하고, 이에 마키는 당황한다.

~1131

우미, 코토리, 호노카에게 노조미의 흉내를 낼 것을 요구받는 마키. 마키는 저항하다 부끄러워하며 노조미의 사투리를 쓴다.

~1149

하나요의 니코니코니”. 이에 반응을 보이는 호노카의 우미 말투의 -”와 코토리의 하라쇼”.

~1153

코토리의 말투로 니코는 그렇지 않아라고 하나요에게 화를 삭히며 말하는 니코. 자신의 흉내를 내는 니코를 보며 코토리는 당황한다.

~1158

빵을 먹으며 등장하는 호노카 역의 노조미. 에리 역의 코토리는 또 지각이냐고 호노카 역을 맡은 노조미에게 말한다.

~123

자신의 말투로 내가 저랬나?”하고 당황해하며 코토리에게 묻는 호노카. 코토리가 그렇다고 하자 호노카는 체념한다.

~1219

하나요 흉내를 내며 큰일났다고 하며 들어오는 에리. 하나요 흉내를 내며 숨을 고르고 말을 한다.

~1225

자신의 말투로 돌아오며 이상해라고 말하는 에리. 모두들 자신의 표정으로 돌아온다.

기본적으로 말하고 싶은 부분은 복장과 말투에 관한 부분이다. 외형적으로 가장 드러나는 부분으로, 각각의 캐릭터가 역할을 바꾸기로 한 캐릭터로 잘 유지하고 있다. 디테일한 부분은 여기서 부터이다. 첫 째, <~1035>에서 등장하자마자 역할을 바꾼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자신의 말투로 인사하는 호노카이다. 호노카의 덤벙대는 성격에 걸맞는 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둘 째, <~1100> 린의 짧은 치마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미이다. 여러 차례 노출이 많은 복장에 우미가 부끄러워했다는 걸 생각해보자. 셋 째, <~1105초> 이것도 우미에 관한 건데 한 번 린 흉내를 시작하니까 정말 성실하게 한다. 심지어 이후로는 내내 린의 표정까지 유지한다. 우미의 성실성을 확립하는 대목이다. 넷 째, <~1110><~1117>에서 마키 흉내를 내는 린과 진짜 마키의 태클, 그리고 린의 거절하겠어요이다. 마키라는 캐릭터를 제외하고 뮤즈 구성원 중에서 그렇게 태클을 걸고 거절을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없다. 다섯 번째, <~1131> 끝까지 저항하다가 데레를 보이며 마지못해 노조미의 사투리를 쓰는 마키... 디테일이란 건 한없이 디테일이라, 하나하나 짚다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여기까지만 풀겠다. 러브라이브에는 이 2분이 채 못 되는 시간에 담겨있는 디테일의 존재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러브라이브는 캐릭터 정체성을 지향하는 디테일 부분이 강점인 작품이다. 그리고 에피소드에 의한 드라마의 완성도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건 캐릭터를 위한 아이돌 리얼리티 쇼이고, 드라마로 완성되지 않아도 그 전에 디테일에서 캐릭터가 충분히 완성되기 때문이다.

 

5.

나도 양심이 있어서 러브라이브가 카미애니메라고는 말 못 하겠다. 완성도 떨어지는 에피소드, glee 표절 문제, 그리고 엔딩 문제 등 까려면 깔 문제가 넘치고 넘친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이유들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제작된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서는 꽤 훌륭하게 만들어졌다. 적어도 제 기능은 하고 있는 셈이다.

글을 닫으면서, 내 소박한 바람은 사람들이 러브라이브 애니메이션을 깔 때 너무 심하게 까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앞으로 깔 때 조금만 심하게 깠으면 좋겠다.


@mikibear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