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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리뷰/나노하의 리뷰는 리뷰다

리뷰는 리뷰다 - 걸스 & 팬저




가까운 듯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당신.
첫 문장부터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밀리터리 장르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축약하자면 저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밀리터리 장르에 대한 첫 인상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싶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고증에 묻혀 정작 스토리나 연출이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이 빈번하게 있다보니 밀리터리물은 이래저래 추천하기 참 애매한 작품군이기도하다.
 
제목에서부터 벌써 ‘팬저’, 독일어로 ‘전차’라는 단어가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는 걸즈 & 팬저 역시 밀리터리 장르가 가지는 고질적인 핸디캡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게다가 설정집을 읽어보니 여학생들이 전차를 몬단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필자는 정말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발톱의 떼만큼도 없었다. 밀리터리 장르와 모에화 컨셉을 접합시킨 스트라이크 위치즈의 대규모 성공이후 너무나도 많은 작품들이 이와 비슷한 아류작을 쏟아냈고, 필자는 이런 시류에 편승해서 어떻게든 한 건 건져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작품들은 정말로 싫어한다. 작년 말에도 우폿테가 이런 종류의 나쁜 예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실행해보였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어줍잖은 모에화로 망하기 딱 좋은 테크트리를 들고왔다고 거의 확신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옛 현인이 말씀하시길 ‘ 책을 겉표지만 보고 판단하지 마라’고 했던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걸즈 & 팬저는 대세라고 불리는 모에 컨셉에 무임승차하는 작품들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굳이 따지자면 왕도를 택한 작품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모에 코드와 맞물리는 각종 판치라, 캐릭터들의 섹스어필이 어느새 밀리터리 장르의 교과서로 통용되는 시점에서 이런 요소들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스토리텔링을 선택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다 가는 쉬운 길을 놔두고 둘러가는 길을 택한거니까.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미즈시마 츠토무 감독을 비롯해서 제작진 사이에 ‘이거 통할 수 있다’는 일련이 확신에 가까운 기대감이 있었을지도. 올 상반기 주목할만한 작품에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판매고와 리뷰어들의 호평까지 챙긴 이유는 이런 부분들이 분명히 작용했다.

오합지졸 팀이 정상까지 올라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류의 작품은 사실 각종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에서도 무수하게 사용된 뻔한 클리셰다. 우정, 용기, 열정, 노력. 작품이 순진하게 담아내기엔 너무 낡아 버린 듯한 가치관들이 총 집결된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낡은 소재들을 꾸밈없이 담아낸다. 우리는 앞으로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뻔히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주인공팀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떼 묻지 않은 특유의 순수함 때문이리라. 여기에 고증에 충실하는 밀리터리적 요소를 ‘전차도’라는 하나의 스포츠 경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내서 고증을 위한 억지스러운 플롯에서 탈피했다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스포츠 컨셉의 시원스러운 연출은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커리어를 쌓은 미즈시마 츠토무 감독의 센스가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햇병아리 신인 성우들로 구성된 메인 캐릭터들의 연기력 역시 흠잡을 데 없었다.
 



 
비록 다소 황당무계한 스토리 설정, 뭔가 톱니바퀴가 맞지 않는 듯한 일부 고증과 연출, 분량 부족으로 인한 치밀하지 못한 전개 등 감점 요소가 일부 있지만, 앞서 설명한 장점들이 이 단점들의 구멍을 조금씩 채운다. 기존 밀리터리 장르로서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단순히 모에 코드와의 접점을 만들지 않고도 대중화 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좀 더 점수를 얹어주고 싶다. 게다가 오락성 측면에서도 볼 사람만 본다는 밀리터리 장르답지 않게 누구든지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의외의 강점까지 가지고 있다. 새로운 도전과 다양한 시도를 통한 작품의 존재의의를 확보했고, 남녀노소 즐길수 있다는 대중적 오락성, 2013년 상반기의 인상적인 상업적인 성공까지. 여기에 캐릭터에 얹어가는 얄팍한 꼼수나 부리는 요즘 작품들 옆구리에 105mm를 한방 먹인 듯한 통쾌함은 덤이다. 근래에 보기드문 투 썸즈 업할만한 작품.



스틸컷 출처 : 마이씨앗(http://www.myc-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