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읽을 만한 잡지가 혹시 있을까 발간지 항목을 뒤져보았다. 그러다가 잡지 이름은 처음 보지만 내놓은 출판사가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들어 책을 구매해 보았다. 그래도 ‘랜덤하우스’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무게가 있는 출판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책을 받아들고 꽤 당황했다. 책이 냄비 받침대로도 못 쓸 핸드북 크기였기 때문이다. 페이지는 175페이지 남짓. ‘이게 8,500원이라고?’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던 대목이었다. 그래도 차분하게 내용을 읽기로 하고 장을 넘겼다.
창간호에서 크게 다루는 세 소재는 얼마 전 은퇴를 선언한 미야자키 하야오,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국내에서 일본문단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히사이시 게이고, 그리고 ‘달려라 메로스’와 ‘인간실격’으로 잘 알려진 다자이 오사무 세 인물이다. 최근 ‘빙과’ 등 고전부 시리즈를 냈던 요네자와 호노부에 관한 평론이나 오쿠다 히데오, 미야베 미유키의 최근 저작들에 대한 서평 또한 담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문학작품에 관한 서평이 내용을 채우고 있다.
일단 무엇보다 글을 기고한 사람들이 편집자나 번역가 등 직접 관련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거나 교수 내지는 평론가로서 비교적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는 사람임이 눈에 띄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일본 문단과 미야자키 하야오에 관해서 자신의 의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이 이 잡지의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국내에선 좀처럼 모아보기 힘든 (사람마다 일종의 엘리트주의를 느낄 수는 있겠지만) 양질의 글을 이렇게 모아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도 의의가 있는 일이다.
별개의 문학작품 혹은 작가에 관한 내용 뿐 만 아니라 ‘일본 문학 출판동향’ 혹은 ‘소설가가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같은 에세이 섹션에서는 내용이 천편일률적으로 지루해지지 않게 나름 노력했다는 기분도 받았다. 또한 기획연재에서는 일본의 전통문화에 관한 섹션과 우리나라의 현대 도시 공간과 식민체제의 관계에 관한 섹션을 마련했다. 특히 후자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범대중적으로는 잘 드러내지 못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관점을 드러내서 조금 놀라기도 했다. 역시 이 또한 이 매체의 특성이자 존재의의라 느껴진다.
얼핏 생각해도 이 잡지가 출판사 입장에서 수익을 바라보고 기획한 매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에 무라카미 하루키, 오쿠다 히데오, 다니자키 준이치로 정도를 읽고 즐기는 층은 많을지 몰라도, 일본 문단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층은 많지 않다. 일본 문화 그 자체를 분석적으로 생각하기를 원하는 계층을 따지면 더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못 받은 건지, 안 받은 건지는 몰라도(아마 못 받은 것이겠지만) 이 잡지, 광고도 별로 없다. 그만큼 기획과 출판 그 자체에 의의를 두었고, 창간사와 편집후기에서도 그러한 의도를 가진 냄새가 풀풀 난다. 조금은 이기적일지도 모르는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그러한 욕심을 가지고 시작했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사실 창간호에서 아쉬운 점도 많지만 역시 딱 하나만 이야기를 해보라면 역시 이 잡지가 ‘일본문화콘텐츠 월간지’를 캐치프라이즈로 내세우면서 정작 내용은 문학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에 관한 칼럼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일본 음악, 영화, 게임 등의 대중문화에 관한 섹션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왜일까? 창간호라서 조금은 점잖게 보이고 싶은 것인지, 혹은 미야자키 하야오 정도가 아니면 문학에 비해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향후에는 이러한 메스 내지는 팝퓰러 컬처도 충분히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전문가가 오타쿠 문화에 손대는 글을 써서 오타쿠들을 열받게 만드는 것은 전문가가 제일 잘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아닌가.
@mikibea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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