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곰 2014. 1. 1. 19:43

아마도 이 작품에 대해서 언급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사이버펑크'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장르라는 것이 애매모호하기도 하고 작품을 보는 관점을 지나치게 한정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장르적인 특징을 짚지 않고 넘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사이버펑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매트릭스', '마이너리티 리포트', 원론적으로는 '뉴로맨서',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 등의 많은 작품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는 극단적인 하이테크, 디스토피아, 체제전복적인 인물, 거대권력 등의 공통적인 내용틀을 가집니다. 다만, 공통적인 가정에서 작중에서 제시하는 도구 혹은 기호들은 작품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거대권력은 매트릭스에선 '기계진영', 마이너리포트에선 '프리크라임 시스템'으로 나타납니다. 사이코패스에서는 '시빌라 시스템'으로 나타납니다. 단순히 작품마다 이러한 요소들의 이름만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작동 범위 등 여러 요소에서 세세하고 큰 차이를 두면서 제각기 차별화를 꾀합니다. 사족이 길었습니다만, 장르매체는 장르적 공통점과 작품개별적 차이점을 가지며 사이코패스 또한 이러한 점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전 절대로 이 책을 그래서 읽은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연장선에서, 사이코패스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자에게 문제의식을 제기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역시 작중 설정의 기호성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감상자에게 시민들이 시빌라 시스템 하에서 철저하게 통제되는 사회를 제시하면서 제레미 벤담, 홉스 혹은 마키아벨리적 국가관에 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생산자 입장에선 으레 대중 콘텐츠가 그렇듯 감상자에게 자신이 의도했던 바와는 다른 자의적인 해석을 열어둘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에 의한 방법은 감상자마다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사상에 의해 수용 수준과 방향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72를 보면 그 분을 떠올리고 그 분을 보면 72를 떠올리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보다 더 감독이 원한 방향으로 감상자의 사고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주제와 직결된 인용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이코패스는 전 22화 동안 인용된 작품은 열 네 작품, 작가와 철학가 등 인물명만 따져도 열 명 이상입니다. 사실 종합콘텐츠, 특히 시각 매체를 동반하는 콘텐츠인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러한 노골적인 인용법은 주된 전달 방법으로는 잘 쓰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특정 다수를 수용자로 삼는 대중 콘텐츠 특성상 개개인의 감상자의 지식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하는 사람만 이해시키고 넘어간다는 것은 애니메이션과 같은 대중 콘텐츠의 에티튜드와는 크게 빗나갑니다. 이러한 다소 작가주의적인 서술법으로 인해 콘텐츠의 수용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코패스에서는 지속적으로 인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강제적으로라도전달하고 싶은 주제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주제라 함은 누구에게나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듯 사회, 권력, 선과 악, 자유의지 등의 주제에 속하는 상당히 본질적인 질문들입니다. 작품은 이러한 질문을 감상자에게 던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게 과할 정도가 되어 선문답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는 걸 감안해도 말입니다.

 

설명받는 입장에서는 진짜 모르는데 생략하면 좀 열받을 수도

 

이러한 점이나 이 외에도 여러 면에서 사이코패스는 메시지 자체는 제법 잘 짜놓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메시지의 전달을 저해한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하나를 들자면, 작품의 기호 체계 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아카네의 태도입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서 주인공의 역할은 보통 주인공 주위의 세계와 대립하거나 혹은 그 세계 안에서 말라죽어가거나, 둘 중 하나를 맡게 됩니다. 물론 아카네는 명백하게 전자입니다. 또한 아카네는 비교적 작중에선 옳은인물로 묘사가 됩니다. 1화부터 최종화가 끝날 때까지 아카네의 태도는 정의롭고 너무나 단호해서 후에 가서는 영웅적인 면모까지도 보이는 듯합니다. 그러나 영웅적 주인공의 태도는 감상자 입장에서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 해석의 통로 그 자체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디스토피아 작품에서의 대립형 주인공들이 자신의 신념과 세계관 사이에서 결국에는 혼란(혹은 세계에 의한 착란)에 빠지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1984 등과 같은 맥락의 작품들을 생각해보았을 때, 주인공이 겪는 혼란은 작품으로 하여금 전적으로 감상자에게 문제의식에 관한 판단을 요구하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어떠한 외부 관점도 배제하고 온전히 감상자에게 질문을 던지는데 일조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카네의 태도를 명백하게 영웅적으로 설정한 것은 영웅 심리를 내세워 감동을 주려고 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요즘말로 답정너 이상의 의미가 있는가에 관해선 의구심이 듭니다. 질문을 던지려면 정답을 같이 던져주어선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건 나쁜거니까요

 

그 외에도 액션물인가, 형사물인가, 드라마물인가, 사이버펑크물인가 하는 정체성에서도 스스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몇몇 플롯 진행도 상당히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작품의 틀 자체를 옴니버스로 잡지 않는 이상, 각 막마다 바뀌는 진행 흐름과 관점에 감상자들은 쉽게 초점이 흐려지고 맙니다. 아마 한정된 화수 안에 제작 측이 원하는 내용을 다 담아내려는 욕심으로 인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사실 사이코패스는 최근 제패니메이션에서 공각기동대 등 극소수 작품을 제외하고는 사이버펑크를 직접적으로 내세운 작품이 없어 신선함으로 상당히 주목받았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존 사이버펑크의 클리셰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은 작품이고, 오히려 그 안에서 상징 체계를 잘 짜놓은 작품입니다. 몇몇 위화감이 드는 플롯을 제외하면 드라마나 형사물로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개인적으론) 이 작품에서 전율이 오르는 액션도, 감동할 만큼의 드라마도, 충격적일 정도의 문제의식도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사이코패스가 사이버펑크 컨셉을 띈 괜찮은 드라마물정도의 작품으로 남은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