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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칼럼

심심해서 써보는 근친 코드에 대한 진화론적 잡상

1/4의 과학과

1/4의 농담과
1/4의 잉여와
1/4의 잡상이 합쳐진 글입니다.
진지하게 받지 마시고 그냥 적당히 읽어주세요.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약간의 사담이 될것 같은데, 우리나라를 통틀어서 진화론에 의거한 동물행동학을 전공한 교수님은 딱 2분 밖에 없다. 게중에서 한분은 이화여대에 계시고 다른 한분이 내가 사사했던 교수님이셨으니..(?)
그런데 뭐 어차피 여기선 그런이야기 많이 안할거다. 딱히 할 부분도 아니고 해봤자 별로 좋을것 같진 않아서... 다만 이쪽 계열의 마이너성을 조금 알리고 싶어서...
 
노게임 노라이프 4권인가 5권에서 나왔던 사랑이란 무엇인가에대해서 사람마다 달라서 몰라! 라는 답변을 한것을 본적 있는데, 일정 부분은 동의하는편이고 일정 부분은 동의 하지 않는다.
 
물론 사랑이라는 부분에 제대로된 해석이 작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단순한 동물의 경우 짝짓기 매커니즘을 제대로 확인한 경우도 있고, 실제로 작용하는 호르몬등을 통해서 인위적인 짝짓기를 가능하게 하는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인간에 한해서는 그런게 아직 명확하게 규정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인간을 대상으로한 최음제는 거진다 거짓이다. 그나마 유사하다고 알려진 돼지최음제를 쓰거나, 정력제를 쓰는정도)
 
물론 흔한 칼럼들을 보면 이러이러한 호르몬이 작용하고 사랑이 불타오르고 식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게 거짓말이라곤 안하겠지만, 그게 100% 정답은 아니다. 그냥 밝혀진 일부를 통해서 전체를 말하고 있는 부분이라, 표현 그대로 케바케라 하겠다.
 
또한 20세기에 가장 충격적인 글중 하나로 남았던 이기적 유전자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인간의 사랑을 100% 설명하진 못한다.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긴하지만서도.
 
어째든 이렇게 불분명하기 짝이 없는 여러가지 이야기 속에서 모든 지표가 NO를 향해 가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근친이다.
 
진화론적 사고방식에서 유전자적 다양성을 보존하고 뒤로 물려줘야할 책임이 있는 유전자 생물체가 근친을 통한 리스크를 짊어진다는건 사실 크게 말이되지 않으며, 생화학적으로도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어도, 생물체들이 본능적으로 근친을 멀리하고 본인과 유전자적으로 완전히 다른 생명체를 선호한다는것은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서 밝혀진 사실이다.
 
딱히 실험적 결과가 아니더라도,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근친을 멀리하는것을 당연시 해왔는데 (지방에서 가장 잘나가고 이쁜 여자가 근처의 잘난 남자들을 다 차버리다가, 먼곳에서 여행온 평범한 남자에게 끌리는것 자체가 유전자적 다양성을 위한 생명체의 본능에 해당된다. 어떻게 보면 RPG에서 남주인공에게 여자가 꼬이는 것은 스토리적의 문제를 제외하고서라도 유전자적으로 당연한일) 유독 문학에서만큼은 근친이라는 파트가 상당히 키 포인트가 되고 있는듯하다.
 
물론 문학이라는 부분에서 금기를 넘어선다는 부분은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일 수 밖에 없다. 단순한 사랑을 속삭이는 이야기를 보는 것도 즐거울 수 있지만, 우리는 단순히 사랑을 속삭이는 소설을 즐기지는 않는다.
라이벌이 됬든 뭐가됬든간에 역경을 뛰어넘으면서 사랑의 한계를 시험하며, 그 아슬아슬한 선을 즐기게 된다. 그런맥락에서 사회라는 거대한 틀을 역경으로 삼으며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근친이라는 파트는 상당히 매력적인 이야기 일 수 밖에 없다.
별다른 라이벌이 없다하더라도, 자매관계, 부녀, 모자 관계는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거대한 역경이고 산일 수 밖에 없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응원을 할 수도, 응원을 안할 수도 없게끔 만들며 우리를 혼돈에 빠지게 만든다.
 
그나마 서브컬쳐 문화에서의 근친코드는 하나의 히로인을 늘리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히로인을 팔아서 먹고 사는 입장에서 굳이 금기를 범한다는 리스크를 질 까닭이 없이 그냥 또다른 의미의 히로인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흔히 사용 되고 있는 것이다.
 
정형화 되어가는 캐릭터의 구성 속에서, 주인공과 이어진 색다른 입장에서의 히로인의 존재는 향하고 있는 대상이 주인공일지라도, 엄밀히 말하면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입되면서 근친 아닌 근친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작품에서 피가 이어진 여동생과 실제로 이어진 케이스는 매우 손꼽히며, 그러한 경우에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대부분의 경우 또다른 히로인과 이어지는 주인공을 보며 오열(?)하는 근친 캐릭터를 보며 그 캐릭터에 모에를 느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사실 문학적인 필요성이나 서브컬쳐적 케릭터의 존재의 필요성을 제외하고 근친을 이야기하면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불가능한것이 바로 근친의 존재인데, 이것이 사회에서 상당히 빈번하게 벌어지고 문제화 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케이스의 해답을 [정자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궁금하시면 물어보시라)  다만 그 책에서 언급하는 경우 10-20%의 케이스의 2남자의 유전자가 하나의 여자의 몸에서 서로 마주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고, 이것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는...
 
실제로 진화론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남자는 여성에 비해 유전자를 남기는데 유리하면서 동시에 불리한 구조를 띄고 있다. 여성의 경우 그 자식이 100% 자신의 자식이라고 확신할 수 있음에 반해, 남자의 경우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의 것이라는것을 자연적으로 확인 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내 수정을 하는 동물의 경우 여성은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최선의 남자를 찾아서 묶어두기 위해 노력하고, 남성의 경우에는 최대한 씨를 많이 뿌리는데 주력하게 된다.(물론 현대적으로 완전히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과학적으로 그게 전부가 아니란걸 증명해내고 사회적인 제약이 있으니까. 그냥 일반적인 동물의 이야기다.)
 
혹자는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빙빙 끌고 가는 부분에 대해서 이미 이해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 근친은 근친이되 유전자적 유사성이 상당히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케이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케이스의 경우 1. 부녀의 케이스의 경우에는 근친아닌 근친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유전자적으로 완전히 다른 두사람이며, 동시에 딸은 아버지의 부양능력을 이미 직접 목도했다.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다.
2. 남매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물론 이경우는 어머니는 같게되니, 유전자가 절반은 일치하게되나, 어째든 유전자적 위기는 조금 낮아지게 되며, 서로 오랜 기간을 볼 수 있게되니.... 반대로 케이스3인 모녀의 케이스의 경우는 절대 불가하다. 그둘은 100% 유전자적으로 얽힌 관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 대체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근친의 코드의 경우 대부분 남매, 부녀의 경우가 대부분이고 모자를 다룬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 동인지에서는 좀 본적도 있는거 같긴한데, 일반 적인 경우에서 모녀의 정렬적인 사랑을 다룬 경우는 거의 없는거나 다름없다. 그 케이스의 경우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배덕감을 즐기는 것인데 글쎄.. 그건 아예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야기는 길게 늘어졌지만 근친 코드의 사용은 금기라는 장애물 설정, 하나의 유형의 히로인 창조, 실제적 가능성등을 통해서 설명해 볼수 있다는 이야기다.
 
근데 써놓고 보니까 그냥 생물 행동 진화론 이야기가 된것 같아서 좀 찝찝하지만 그냥 심심해서 쓴거니까 이해해주시기 바라며 그냥 대충 마무리한다(?)
 
글감 받습니다(?)